중국 만주 중심 지역이 심양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7세기 초 동아시아는 격동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청의 건국사 1619년 명군을 격파함으로 역사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2년도 안되서 만주의 핵심지역이 누루하치 손에 들어갔습니다.
또하나의 패권 교체기가 다가왔습니다. 명나라도 1626년 중원진출을 위해 영원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비록 노쇠했지만 300년 제국의 힘은 결고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누루하치뒤에 즉위하고 어떻게 극복할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당시 후금은 홍타이지 집권시절에 누르하치 시절보다 훨씬 군사력이 강해집니다. 명과의 육지 전투에서 연전연승하게 됩니다. 후금이 명나라의 심장부인 북경쪽으로 산해관을 돌파해야 하는데 산해관은 철옹성 산해관을 돌파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육로로 산해관을 공격하는것보다 수로를 통해서 산둥반도에 상륙할수 있습니다. 수군과 함정이 없는 것입니다. 후금은 조선에 수군을 보낼 정도였습니다. 조선의 대답은 항상 부정적이었습니다. 이런 난관을 돌파할수 잇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1632년 명나라 수군기지에서 수군 장수들이 반란을 일으킨것입니다. 하지만 반란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정부군의 거센 공격에 성이 함락될 지경에 이르럿죠 경중명과 공유덕은 꼼짝없이 몰싹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황에서 반란군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도발을 강행합니다. 바다로의 탈출입니다. 반란군은 최신 화포를 이용해 호위를 뚫고 일제히 바다로 나갑니다. 진압작전은 곧 추격전으로 변햇습니다.
명나라 수군과 함정들을 이끌고 반란이 진압해 후금의 입장에서 그들을 자기의 편으로 귀순시켜서 군사력의 기본자체가 달라지게 되는것이죠 홍타이지는 그들을 자기편으로 귀순시키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